세계를 제패한 애플과 로마 제국의 공통점
강자의 조건
2014년,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 - 강대국의 조건은 로마 제국, 대영 제국, 몽골 제국 등 초강대 패권 국가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성공적으로 번영했는지 탐구한 프로그램이다. (6부작으로 써 현재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
또한 '강자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책도 나왔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여러 시대에 걸쳐 지구에 존재했던 강대국들이 자국을 성공적으로 이끈 전략이 현대의 기업 경영 전략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내용을 시작하기 전에 이 강대국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보고 가자.
강대국과 일반 국가의 차이점
로마 제국(Roman Empire) vs 그 당시 다른 국가의 모습 (기원전 약 20년 ~ 서기 약 200년)
당시 대부분의 다른 국가나 부족들은 도시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급자족적인 농업 공동체에 의존했다. 도로 시스템은 당연히 전무 했으며 상수도와 같은 공공 인프라는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 위 사진에 해당하는 켈트족은 작은 마을이나 농촌 공동체에 의존하였고, 주로 자연 방어 지형을 활용해 방어 거점을 만들었으며, 농업과 가축 사육에 의존하는 생활을 했다.
로마 제국과 같은 시기에 존재 했던 다키아 왕국(기원전 1세기 부터 서기 106년 까지)의 요새 터다.
로마 제국(Roman Empire)의 서기 약 117년에 제국의 확장이 절정에 이르렀던 영토의 모습이다. 다른 국가들이 아주 작은 점 크기의 영토를 보유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로마 시 에는 당시 백만 명 이상이 살고 있었으며 하수도, 수도교, 포장 도로, 공공 목욕탕 등 인프라가 매우 발달해 있었다.
80,000km에 달하는 도로망은 제국의 확장과 군사적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로망 덕분에 로마는 병력 이동, 상업 활동, 소식 전달 등을 신속하게 할 수 있었고, 이는 강력한 중앙 집권적 통치의 기반이 되었다.
로마는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고, 아치와 돔 구조를 혁신적으로 활용해 건축물의 규모와 안정성을 높였다.
처음에 언급했던 국가들과 상당히 격차가 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몽골 제국(Mongol Empire) (약 1200년 ~ 약 1400년)
그들의 군사적 능력과 조직력, 외교전술 그리고 탁월한 기동성 덕분에 광대한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다.
특히 몽골 제국의 꽃은 엄청난 기동성을 바탕으로 한 확장성이다. 몽골 제국의 군대는 다른 국가들과 압도적인 기동성 차이를 보였다.
고구려 모본왕의 개마무사 : 1일 최대 약 72km
엘리자베스 여왕 왕실 파발 : 1일 최대 약 96km
임진왜란 당시 파발 : 1일 최대 약 105km
몽골제국 유럽 원정군 행군 : 1일 최대 약 151km (겨울 러시아 지역 정벌 당시)
몽골제국 유럽 원정군 파발 : 1일 최대 약 352km
헝가리 평원의 전쟁터에서 몽골고원 까지 일주일 만에 주파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들은 어렸을 때 부터 말을 타고 전투를 자유자재로 수행할 수 있었으며, 다른 어떤 민족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뛰어난 기동력을 자랑했다.
이 덕분에 정보전과 정찰에 능할 뿐만 아니라, 발달된 통신 및 교통 시스템을 통해 넓은 영토를 신속하게 통치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강대국이 된 이유 : 다양성과 포용력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국가들이 강대국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
세계를 호령하던 이 국가들이 다른 민족, 다른 국가와 다르게 강대국이 된 이유는 바로 다양성과 포용력에 있다.
즉, 이들은 다른 국가와 다르게 외부 문화를 배척하기 보다는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다.
로마 제국 : 문화의 융합과 포용적 통치
- 그리스 문화의 수용과 발전
로마 제국이 단순한 군사적 힘만으로 강대국이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진정한 성공 요인은 다양한 문화와 인재를 포용한 데 있었다. 로마는 정복한 지역의 문화를 배척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융합했다.
특히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다. 이로 인해 로마는 문화적으로 풍부해졌고 그 권위가 증대되었다.
철학 : 스토아 철학은 로마 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는 특히 로마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철학을 로마의 정치적, 도덕적 체계에 접목시킴으로써 지배력을 강화했다.
과학과 의학: 그리스 출신의 의사 '갈레노스'는 로마 황제들에게 의학적 자문을 제공했으며, 그의 연구는 로마 제국의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이런 학문적 교류는 로마의 과학, 의학 발전뿐만 아니라 제국의 지속적인 번영을 가능하게 했다. 그 영향력이 너무 커서 중세까지도 지속되었다.
- 정복지 인재들의 활용
죽이거나 배척하는게 아니라 다른 정복지의 인재들도 적극적으로 로마로 끌어들였다. 그들의 기술과 지식은 로마 제국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로마는 이 인재들을 통해 제국의 권위를 강화할 수 있었다.
군사 기술: 로마는 군사적 확장을 통해 다른 지역의 전술과 무기를 배우고 이를 자신들의 군대에 적용했다.
예를 들어, 카르타고를 정복한 후 로마는 그들의 해군 기술을 배워 강력한 해군력을 구축했다.
또한 로마는 유대인들의 공학 기술을 통해 로마의 토목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정복지의 인재들과 그들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로마 제국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더 큰 번영을 누렸다.
제국 내 다민족 엘리트의 활용: 로마는 정복지 출신 인재들을 제국의 관리로 적극적으로 임명했다.
예를 들어, 북아프리카 출신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로마 제국의 황제에 올랐으며, 이는 로마 제국이 다양한 민족 출신의 인재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능력이 있으면 출신이 로마가 아니어도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로마 제국은 이렇게 각 지역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함으로써 제국의 행정 시스템을 강화하고, 다양한 민족 간의 결속력을 높였다.
- 포용적 시민권 제도
정복지의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그들과의 동화를 꾀했다. 초기에는 제한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마인들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212년 카라칼라 황제가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로마 제국은 대규모의 다민족 국가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제국 내 각 지역의 주민들은 로마에 더 강하게 결속하게 되었고, 제국의 안정성도 더해졌다.
결국 좋은 인재들이 기회를 찾아 계속해서 로마로 넘어가게 되고 로마는 더욱 더 발전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몽골제국 : 종교적 관용과 다민족 행정 체계
몽골제국 역시 기마군단이 단순히 빠르고 화살만 잘 쏘아서 세계 최강의 제국이 된 것이 아니다.
- 종교의 자유 보장
칭기즈 칸과 그 후계자들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것이 제국의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몽골 제국은 전쟁 후 정복지의 종교적 상징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함으로써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여타 다른 국가들이 정복 후 자기들의 왕 혹은 종교를 주입하려는 것과 반대였다.
예를 들어, 중국을 정복한 후에도 중국의 불교 사찰과 유교 사원을 보호했으며, 이러한 종교적 시설의 운영을 지원했다. 이는 몽골 제국이 단순한 군사적 정복자가 아닌, 정복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통치자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게다가 하나의 종교를 통해 정치적 결속을 꾀하는 대신, 각 종교가 지역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등 모든 종교를 존중하며, 각 종교 지도자들을 보호했다. 또한, 종교 시설과 교육기관도 보호받았으며 종교 지도자들에게 특별한 면세 혜택도 제공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불필요한 중앙 부처의 신설이나 새로운 관리직 채용, 또는 각 지역 결속을 위한 파견이 필요 없었으며, 그로 인해 자원과 인재를 다른 중요한 분야에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종교적 관용 정책은 몽골 제국이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면서도 종교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 다민족 관리 체계의 구축
몽골 제국은 정복한 지역 출신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여 행정에 활용했다.
몽골 제국의 이러한 포용 정책은 각 지역의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제국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뛰어난 행정 능력을 가진 페르시아 지역을 정복한 후, 인재들을 제국 내 여러 지역의 세금 징수와 행정 업무에 배치했다.
페르시아의 행정 체계와 세금 징수 방식은 몽골 제국이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페르시아 출신의 관리들은 특히 서아시아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 중앙아시아 지역의 인재들이 몽골 제국의 군사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들이 가진 공성전 기술과 화약 기술 그리고 투석기 등 군사력 강화를 통해 몽골 제국의 군사적 성공에 기여했다.
또한 중앙아시아 출신의 학자와 기술자들은 몽골 제국의 인프라 개발과 무역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처럼 다양성과 포용을 중시한 정책 덕분에 몽골 제국은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과연 국가에만 적용되는 이야기 일까?
나는 다양한 비즈니스 사례와 기업을 분석하는 입장으로써 이 다큐멘터리가 시사하는 바를 보고 이게 비단 국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공식이 기업들에게도 적용되는지 실제 사례를 살펴 보았다.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들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Apple, Microsoft, Starbucks, Meta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인종, 성별, 배경, 생각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를 통해 혁신을 이루고 있다. 강대국들의 성공 원리가 현대 기업 경영에서도 유효함을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의 사례를 베이스로 더 들어가서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았다.
SAP: 자폐 스펙트럼 인재를 활용한 생산성 확보
SAP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ERP(재무, 생산, 유통, 인사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솔루션 회사 중 하나다.
아마 규모가 어느정도 있는 회사에 재직중인 담당자라면 대부분이 아는 회사다.
23년 기준 연 매출은 약 43조원이며 Apple, Coca-Cola, Nestlé, Nike등의 대기업이 이용하고 있다. (23년 매출 기준 아모레퍼시픽 약 5조원, 카카오 그룹 9조원)
Autism at Work 프로그램
SAP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재들을 채용하여, 이들이 가진 뛰어난 분석력과 집중력을 활용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뛰어난 세부 사항 분석 능력과 패턴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이들이 IT 시스템 테스트, 품질 관리, 데이터 분석 등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생산성 향상: SAP는 자폐 스펙트럼 인재들이 고도로 정밀한 데이터 분석 및 품질 관리 업무에서 평균 직원보다 30% 더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었다고 보고했다.
품질 개선: 특히 소프트웨어 테스트와 같은 작업에서 자폐 스펙트럼 인재들은 패턴 인식 능력을 발휘하여 오류를 더 잘 찾아내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SAP의버그 검출률을 50% 이상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를 통해 제품 품질 개선과 고객 만족도 향상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PayPal : 퇴역 군인을 통한 사이버 보안 전략
한국에서는 사용자가 많지는 않지만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들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부터 사업을 하고있던 1세대 글로벌 금융 결제 서비스다.
공동 창업자중 한명이 우리 모두가 아는 일론 머스크.
페이팔은 퇴역 군인들이 보유한 위기 대응 능력, 리더십 및 조직 관리 능력이 기업 운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SERVE 프로그램
퇴역 군인 중에서도 특히 사이버 보안 전문가 출신들이 페이팔의 사이버 보안 부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군인들은 전투에서 필요한 전술적 사고와 정확성, 조직력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보안 위협에 대응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군 경험을 가진 보안 전문가들은 해커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 체계를 강화하고, 시스템 침입을 조기에 탐지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군대에서 훈련된 위험 분석 능력과 데이터 처리 능력이 보안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퇴역 군인들은 사이버 보안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Gentle Monster : 다양한 직업군의 융합을 통한 창의적 혁신
한국의 자랑스러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성장은 어디에서 나온것일까?
젠틀몬스터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기반으로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환경을 조성했다.
본사 직원뿐만 아니라 매장 직원들과도 매일 커뮤니케이션하며 고객의 피드백과 현장 상황을 긴밀하게 공유한다. 고객 모두가 인플루언서라는 생각으로 아주 사소한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젠틀몬스터에서는 직급이나 업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분위기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 낸 의견이라도 많은 직원들의 공감을 얻으면 얼마든지 채택될 수 있다"며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내부 검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한 번 결정된 사안에 대한 추진력은 어느 회사보다도 빠르다"고 역설했다.
젠틀몬스터는 기획 단계에서 대표를 포함해 공간 디자인팀과 비주얼 디렉팅팀을 기반으로 한 4~5명이 콘셉트를 정한다.
이후 10명 정도가 팀을 이뤄 하나의 프로젝 트를 맡아 진행하는데 직급에 관계없이 디자이너 한 명이 PM을 맡아 진행하는식이다.
젠틀몬스터는 사내에 유명 디자이너도 없고 원맨 팀이 아니기 때문에 주제를 정할 때도 저마다 흥미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난상토론을 벌인다
또한 아이웨어 제품을 팔지만 회사 내부는 순수 예술, 건축, 패션, 로봇 공학, 소믈리에, 미디어 아트, 조향 등 다양한 분야의 직무가 경계없이 섞여있다. 이를 확장하여 탬버린즈, 누데이크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젠틀몬스터는 단순한 안경 브랜드를 넘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쇠퇴하는 국가와 기업은 어떤 모습일까
그러면 망가지는 국가와 기업의 모습은 무엇일까?
반대로 하면 된다.
쇠퇴하는 국가와 기업의 공통적인 특징은 변화에 대한 거부, 다양성 부족, 그리고 폐쇄적인 리더십으로 요약할 수 있다.
쇠퇴하는 국가와 기업은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적응하지 않거나 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이는 편향된 시각과 편협된 사고를 키울수 밖에 없는 구조로 나아간다.
1. 변화에 대한 거부 - 국가 사례 : 청나라와 조선 그리고 일본
19세기 청나라의 쇄국 정책은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차단하면서 산업혁명으로 급격히 발전하던 서구 열강에 뒤처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청나라는 경제적·군사적으로 약해져 서구 열강의 침략에 직면하게 되었다.
조선의 흥선대원군은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위협 속에서 국가의 전통을 지키고 외세로부터 조선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강력한 쇄국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조선을 국제 무대에서 고립시키고, 근대화된 서구 열강에 대한 대응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조선이 서구 열강의 우위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조선이 서구와의 교류를 거부한 결과, 근대화된 무기나 기술을 전혀 수용하지 못한 채 전통적인 방식의 군사와 경제 구조에 머물렀다. 이는 곧 서양 열강과의 충돌 시 군사적 열세로 이어졌고, 근대적 경제 체제를 갖추지 못해 내부적으로도 경제 발전에 한계를 맞게 되었다.
변화를 수용하는 개방적인 태도와 혁신을 추구했던 로마 제국, 몽골 제국이 했던 것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쇄국정책으로 인해 조선이 얼마나 뒤떨어졌는지에 대한 청구서는 우리의 선조이자 일반 백성들이 받아들게 되었다. 외교적으로는 고립이 심화되었고 이후 개항과 일본의 침략을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19세기 후반부터 빠르게 산업화와 군사력을 강화하여 아시아 최초의 근대 국가로 자리 잡았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그 국제적 위상이 급격히 상승했다. 결국 일본은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군사적, 경제적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1.변화에 대한 거부 - 기업 사례 : 코닥
비즈니스 스쿨을 다녔거나 경영 전략 관련 서적을 자주 읽는 다면 항상 등장하는 사례인 코닥이 있다. 코닥(Kodak)의 사례는 변화에 대한 거부로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해 쇠퇴한 대표적인 예다.
코닥은 사실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일찍이 개발한 기업이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회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코닥 경영진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이 앞으로 사진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주력으로 삼는 것을 주저했다.
그 이유는 코닥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필름 사업 때문이었다. 코닥은 20세기 중반부터 필름과 현상 인화 서비스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었으며, 사진 필름은 코닥 매출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상용화될 경우, 사람들이 필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고, 이는 코닥의 주력 사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코닥은 디지털 기술을 과감하게 상업화하지 않고, 오히려 필름 카메라에 집중했다.
코닥의 경영진은 필름 사업이 여전히 시장에서 강력한 수익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 변화의 속도가 예상보다 느릴 것이라고 잘못 판단했다. 하지만 그 결과 코닥은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점차 시장에서 뒤처지게 된다.
2. 다양성 부족과 내부 폐쇄성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소련은 초기에는 혁명과 산업화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폐쇄적이고 경직된 체제로 인해 결국 붕괴에 이르렀다.
소련의 붕괴 과정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독재, 자유와 창의성의 억압, 민족과 지역 간 갈등 등을 수용하지 못한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소련은 자유로운 정치적 토론과 다양한 견해를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스탈린 시기(1924-1953)에는 대숙청을 통해 수백만 명의 정치적 반대자와 잠재적 위협 세력이 처형되거나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로 인해 체제 내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소련의 경제는 계획 경제(국가가 모든 경제 활동을 중앙에서 계획하고 통제하는 체제)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소련의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에 기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한 비효율성을 드러냈다.
시장 경제와 달리, 중앙 계획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소비자 수요를 반영하지 못했다. 그 결과, 물자 부족과 과잉 생산이 반복되었고, 국민들은 기본 생활 필수품조차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
또한 공장과 기업들은 중앙정부에서 할당된 목표만을 달성하면 되었기 때문에,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거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이는 서방 국가들이 기술과 산업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동안, 소련은 뒤처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도 마찬가지 였다.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를 강요하는 정책을 폈고 소련의 무신론적 정책과 공산주의적 문화 통제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이는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 내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을 키웠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같은 발트 3국이 독립을 요구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각 공화국들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결국 정치적 다양성을 억압하고, 계획 경제의 경직성을 고수하며, 민족적 요구를 무시한 소련은 내부적으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고, 외부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2. 다양성 부족과 내부 폐쇄성 - 폭스바겐 그리고 토요타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사건(디젤 자동차의 배출가스량을 조작하는)은 가히 전 세계에 충격을 가했던 사건이다. 이 디젤게이트 사건 역시 내부 폐쇄성과 관련이 있다.
폭스바겐의 경영진은 디젤 엔진의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이를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실제 배출가스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차량이 수백만 대에 이르렀음에도, 이를 오랫동안 은폐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 문제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고,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폭스바겐은 이 사건으로 인해 약 300억 달러(한화 약 39조 원) 이상의 벌금과 소송 비용을 지불해야 했으며, 글로벌 신뢰도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경영진이 교체되는 등 내부 개혁이 불가피하게 이루어졌다.
폭스바겐 뿐만 아니라 일본의 토요타도 2009년 가속 페달 결함 은폐 사건이 있었다.
도요타는 내부적으로 수직적인 일본식 경영 구조를 유지하며, 비판적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결함이 발생했을 때, 이를 외부에 투명하게 알리기보다는 내부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내부의 다양성 부족과 문제를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리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도요타는 2010년에만 1,000만 대 이상의 차량을 리콜해야 했고, 미국 교통당국에 약 12억 달러(한화 약 1조 5천억 원)의 벌금을 지불했다. 또한, 기업의 신뢰성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도요타, 폭스바겐의 사례는 모두 조직 내부에서 경영진의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나 윤리적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다양성 부족과 폐쇄적 문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보다 덮으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이들 기업은 각각 안전 문제, 결함 은폐, 배출가스 조작과 같은 큰 스캔들에 휘말렸고, 이는 기업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대비할 교훈을 찾는 데 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다가오는 변화에 대응하는 지혜를 얻는 것이 바로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나오는 유명한 구절,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과거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해 향후 전략을 수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역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창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조직은 혁신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
기업의 관점 - 리더십과 조직문화의 점검
초기 소규모 기업 및 스타트업은 똑똑하고 실행력이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성과 포용력을 바탕으로한 참여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극초기와 다르게 성장 과정에서 기업이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하나의 리더십 스타일이나 관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포용적인 리더십은 혁신을 가속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촉진한다.
변화해야한다.
쇠퇴하는 조직의 공통적인 특징은 내부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고, 단일한 사고방식과 권위주의적 구조를 고수한다는 점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창의적 문제 해결이 차단되고, 이는 곧 혁신의 저해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이나 몽골 제국처럼 다양성과 포용력을 기반으로 한 통치 구조는 그들의 장기적 번영을 가능하게 했다.
- 채용, 문화 등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베타적인 조직
- 사상, 이념, 전략, 철학 등 나와 같은 생각만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
- 직급과 나이 그리고 연차에 따라 상명하복으로 일하는 곳
- 같은 배경, 같은 출신, 같은 학교나 같은 교육과 과정을 밟은 사람들만 모인 곳
즉 폐쇄적인 문화와 이런 시스템의 기업은 시간이 지날 수록 쇠퇴할 것이다. 로마제국, 몽골제국 그리고 SAP나 젠틀몬스터가 이를 증명한다.
여러분이 생각나는 곳이 있다면 아마 그 회사 내부의 사정도 비슷할 것이다.
연인이 싸우지 않으면 그건 한쪽이 참고 있는것이다. 사이가 좋은게 아니라.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 둘이 만났는데 어찌 부딪히는 일이 없을까.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평소에 아무도 내 말에 반박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건 내 말이 다 맞아서가 아니다.
나의 리더십, 우리의 조직문화를 다시 점검해야하는 신호다,
기업의 관점 - 수평적 조직 문화의 필요성
수평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단순히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형식적 변화가 아니다. 김민철을 마이크라고, 이다혜를 샐리라고 부른다고 수평적 조직 문화가 생기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한 위임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조직 내에 조성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너무 길어져서 줄인다.)
구성원들은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고, 이를 통해 조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또한, 민감한 정보를 제외한 기업 내 정보는 특정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고, 투명하게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구성원이 회사의 전략과 방향을 명확히 이해하고, 보다 나은 협업이 가능해진다.
무능력한 소수가 정보를 독점하면 유능한 인재들의 이탈이 이루어진다.
못 믿겠으면 직급으로 찍어누르는 조직에서 소수만 정보를 가지고 있게 해보라. 금방 필연적으로 가세가 기울게 된다.
기업의 관점 - 다양성을 존중하는 채용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인재들이 모일수록 문제 해결 방식이 다양해지고, 창의적인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내가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던 글로벌 패션 대기업에서는 매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했다.
패션 산업 아래 묶여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 중 다수는 패션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이었다.
그중 나의 첫 사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나이는 어렸지만 회사 내에서 촉망받는 인재였고, 그분을 통해 ‘일을 잘한다’는 것과 ‘일이 되게 한다’는 것의 의미를 처음으로 배웠다.
그 분께 배운 지난 날은 정말 감사할 정도로 성장을 빠르게 했던 시기였다. 행운이었다.
최근에 들은 소식에 따르면, 그는 현재 한국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약 1/3을 총괄하는 세일즈 리드가 되었다. 곧 전사 매출을 총괄하는 세일즈 부문장의 자리에도 곧 오를 것 같다.
이 분의 백그라운드 역시 매우 독특했다.
식품영양학과.
이런 인재를 발굴한 인사팀의 안목도 놀라웠고, 그로 인해 나는 왜 기업이 다양성을 존중할 때 성장과 성공을 이룰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회장님의 경영 철학 역시 현지의 다양성과 포용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개인 - 성장 마인드셋
수평적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역량이 탁월해야 한다.
무능한 사람에게 권한을 이양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권한을 부여하면 조직은 방향을 잃기 쉽다.
따라서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고, 조직의 변화를 이끌고 싶다면 작은 성과부터 차근차근 증명해야 한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먼저 신뢰를 보여라.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 더 나은 방법을 찾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와 관점을 끊임없이 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학습이 필수적이다. A급 인재는 늘 좋은 아티클과 정보를 찾아다니면 탐닉한다. 그리고 실무에 적용한다. 그러면서 역량이 쌓이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며 대체불가능한 인재가 된다.
개인 - 유연한 사고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강한 자가 살아 남는게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라는 말이 있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AI 툴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생산성은 천지차이로 벌어질 수 있다.
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것은 AI가 더 잘 한다.
또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속한 집단이 하나의 동질성을 띄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벗어나는게 좋다.
폐쇄성을 가진 곳은 나를 망가트린다.